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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음식 문화와 식생활

by goggum 2025. 3. 24.

고려는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은 왕조였으며, 귀족 중심의 문화가 융성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고려인의 식생활은 종교적, 사회적, 계급적 요인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었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고려 시대는 조선 시대보다 식문화가 더 개방적이고 풍요로운 측면이 많았으며, 술과 육류의 소비, 다양한 국물 요리와 장류 문화, 그리고 궁중과 민간의 식습관 차이 등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고려 시대의 음식 문화와 식생활
고려 시대의 음식 문화와 식생활

 

고려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

 

고려 사람들의 일상 식사는 기본적으로 곡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밥과 국, 장류, 나물 반찬이 식단의 중심을 이루었다. 당시에는 쌀이 귀한 편이었기 때문에 보리, 콩, 조, 기장, 수수 같은 잡곡이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지방에서는 쌀보다 보리를 많이 소비했고, 계절에 따라 각종 곡물을 섞어 지은 밥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찬으로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채소를 무쳐 먹거나 절여서 김치처럼 저장하기도 했다. 고려 시대의 김치는 지금처럼 고춧가루를 넣는 형태가 아닌, 소금에 절인 백김치나 물김치 형태에 가까웠다. 당시 고추는 한반도에 전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맵지 않은 김치가 대부분이었고, 마늘이나 생강으로 맛을 더했다.

또한 고려인은 국이나 탕을 중요하게 여겼다. 된장국, 콩나물국, 미역국, 무국 등이 식탁에 자주 올랐고, 해산물이나 고기를 넣어 국물 맛을 낸 장국류도 선호되었다. 해산물은 특히 남해와 동해 지역에서 풍부하게 소비되었는데, 굴, 조개, 멸치, 김 같은 해조류가 대표적이다.

육류는 고려 시대에 꽤 일반적으로 소비되었다. 불교의 영향으로 일정 시기에는 육식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귀족과 왕실에서는 사냥한 고기나 가축의 고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꿩이나 토끼 같은 야생 동물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육류는 주로 삶거나 찌고, 때로는 구워서 먹었으며, 고기를 잘게 다져 양념과 함께 볶는 방식도 있었다.

떡과 과자류도 고려인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찹쌀을 쪄서 빚은 떡, 기름에 지져낸 유밀과, 쌀튀밥을 꿀에 버무린 강정 등이 명절이나 제례 때 사용되었다. 이런 전통 떡과 과자들은 귀족들의 잔칫상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즐겨 먹는 특별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의 술 문화와 양조 기술

 

고려 시대는 술의 소비와 제조가 매우 활발했던 시기로,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가 만들어졌고 귀족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술은 중요한 사회적 매개였다. 술은 일상 식사뿐 아니라 의례, 잔치, 제례, 접대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되었으며, 각 지역마다 고유의 재료와 방식으로 술을 빚었다.

고려 시대의 술은 기본적으로 쌀, 찹쌀, 보리 같은 곡물을 주원료로 하였고, 누룩을 사용하여 발효시켰다. 이때 사용된 누룩은 오늘날의 막걸리나 청주에 사용되는 방식과 유사했으며, 일부 술은 숙성 과정을 거쳐 맑고 풍미 깊은 청주로 완성되었다.

대표적인 술로는 백하주, 유하주, 두견주, 소곡주 등이 있었으며, 이들 전통주는 향기와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백하주는 이름 그대로 맑고 순한 술이었고, 두견주는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꽃술로 여성들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꽃술 문화는 고려의 미의식과 자연을 중시하는 감성도 반영하고 있다.

왕실과 귀족 계층에서는 술이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위엄과 품격을 상징하는 요소로 여겨졌다.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할 때에는 고급 술과 안주가 반드시 준비되었고, 술을 따르는 예절과 술잔의 모양까지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한편, 술은 약재로도 활용되었다. 약술로서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마셨으며, 실제로 약초를 담근 술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고려 말에는 불교의 금주령이 강화되며 일시적으로 술 문화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술이 일상에 가까운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

양조 기술 또한 발달하여 술을 장기간 저장하거나 맛을 유지하는 방법도 연구되었고, 일부 양조장은 왕실에 직접 술을 바치기도 했다. 술은 고려 사회의 기쁨과 슬픔, 일상과 제의의 경계에서 늘 함께했던 중요한 존재였다.

 

궁중과 민간의 식생활 차이

 

고려 시대에는 계층에 따른 식생활의 차이가 매우 뚜렷했다. 왕실과 귀족이 누리던 궁중 음식은 재료와 조리법, 상차림 방식에서 모두 고급스럽고 화려한 반면, 일반 백성의 식사는 실용적이고 절제된 형태를 띠었다.

궁중에서는 계절과 절기에 맞춘 진연을 올리고, 식사는 기본적으로 삼첩 이상으로 구성된 다채로운 반상 형태로 차려졌다. 밥과 국, 탕, 찜, 전, 회, 나물, 장아찌, 과일, 떡 등이 조화롭게 나왔으며, 궁중 요리사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재료도 귀한 산해진미를 동원했고, 꿩고기, 붕어찜, 굴전, 잣죽, 밤단자 같은 음식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왕실은 영양과 건강을 고려하여 사찰 음식이나 약선 음식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불교적 금육 사상에 따라 고기를 적게 사용하거나 채식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었다. 특히 정월, 백중, 추석, 동지 같은 명절에는 특별한 음식이 준비되었고, 왕실은 이를 백성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반면, 민간에서는 계절 재료를 활용한 간단한 식사가 중심이었다. 보리밥이나 잡곡밥에 된장국, 나물 무침, 김치 한두 가지가 곁들여진 식단이 일반적이었으며, 명절이나 제사 때에야 평소에 보기 힘든 음식이 상에 올랐다. 고기나 생선은 귀했기 때문에 특별한 날에만 먹었고, 떡이나 술도 정해진 날에 한정적으로 즐겼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은 식생활에서 더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식재료의 선택에도 제한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식문화 속에서도 지역별로 다양한 향토 음식이 발전했고, 이는 오늘날 한국 전통 음식의 뿌리가 되었다.

궁중과 민간의 식생활 차이는 단지 경제적 풍요와 빈곤의 차이만이 아니라, 사회적 위계와 문화적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였다. 궁중 음식은 체계적이고 의례 중심이었다면, 민간 음식은 실용적이며 생활에 밀접한 형태로 발달했다. 이러한 이중 구조 속에서 고려의 식문화는 다양성과 균형을 동시에 이루며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 시대의 음식 문화는 단순히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종교, 문화 전반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고려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재료를 바탕으로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들었고, 술과 떡, 제사 음식 등은 공동체의 의례와 함께했다. 왕실과 민간의 식생활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지만, 그 속에는 공통의 맛과 미의식, 그리고 사람을 중심에 둔 식생활 철학이 녹아 있었다. 고려의 음식 문화는 이후 조선 음식의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 음식 문화의 근간이 되는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