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끔찍한 싸움과 파괴를 떠올린다.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과 자원이 소모되는 비극적 역사는 인류의 기억에 깊은 상처를 남겨왔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예상과 달리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시작되고 마무리된 전쟁들도 존재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승패가 갈리고, 한 나라의 운명이 바뀌기도 했던 것이다. 어떤 경우는 군사력 차이가 너무나 압도적이었고, 어떤 경우는 외교적 압력이나 정치적 계산이 상황을 신속히 종결시켰다. 이번 글에서는 역사상 가장 짧았던 전쟁들을 살펴보며, 그 속에 숨은 권력, 외교, 인간 심리의 복잡한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영국과 잔지바르 – 순식간에 무너진 왕국
열강들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던 시대, 동아프리카 인근의 잔지바르는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았다. 잔지바르는 공식적으로는 독립된 술탄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영국은 잔지바르의 정권 교체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술탄을 옹립하는 데 주력했다.
어느 날 잔지바르의 술탄이 갑작스레 사망하고, 영국이 지지하지 않는 인물이 새 술탄으로 등극했다. 이 새로운 술탄은 영국의 사전 승인을 거치지 않고 왕위를 차지했으며, 이에 반발한 영국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영국은 자신들이 임명한 다른 술탄을 세우기 위해 무력 사용을 준비했고, 잔지바르는 이를 무시하며 왕궁을 요새화했다.
결국 영국은 군함과 해병대를 동원해 왕궁을 포격했다. 방어는 허술했고, 잔지바르의 저항은 시작하자마자 무너졌다. 술탄은 망명했고, 잔지바르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게 된다. 전투가 벌어진 시간은 불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전쟁은 단순한 한 나라의 패배를 넘어,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잔혹하게 국제 질서를 자신의 입맛에 맞춰 바꿀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이 전쟁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당시 세계 각국은 국경을 긋고 지배권을 다투면서도, 군사적 충돌을 최대한 짧고 효과적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영국과 잔지바르의 전쟁은 바로 그런 시대정신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중동을 뒤흔든 번개같은 전쟁 –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중동은 오랫동안 긴장과 갈등의 땅이었다. 그리고 어느 해 여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인류사에서 손꼽히는 초단기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나 작은 충돌이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존립을 걸고 싸웠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랍 세계 전체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주변국들로부터 실질적인 군사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선제공격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이른 아침 공군을 출격시켜 이집트 공군 기지를 급습했다.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이집트 공군의 상당수가 지상에서 파괴되었고, 이후 요르단과 시리아로 전선이 확대되었다. 이스라엘은 짧은 시간 동안 압도적인 기동력과 정보력을 활용해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했다.
예루살렘, 시나이 반도, 가자 지구, 골란 고원 등,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손에 넘어갔다. 아랍 국가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국제사회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했다. 전쟁은 불과 몇 날 사이에 끝났지만,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 이스라엘과 주변국 간의 갈등, 중동 내 지정학적 긴장의 상당 부분이 이 전쟁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승리와 함께 국제적 명성과 경계심을 동시에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후 지속될 분쟁의 씨앗도 심은 셈이었다. 6일 전쟁은 짧지만 세계사를 바꾼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신속했던 전쟁의 다른 얼굴 – 포클랜드 전쟁
대서양 남단에 위치한 포클랜드 제도는 한때 대영제국의 영토였지만, 지리적으로는 남미 대륙에 훨씬 가까웠다. 아르헨티나는 오랫동안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왔으며, 군사 독재 정권은 국내 불만을 돌리기 위해 이 제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아르헨티나는 신속하게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했고, 영국은 초기에 다소 당황했지만 곧바로 본토에서 함대와 해병대를 파견했다. 대규모 전투는 없었지만, 거센 해상 전투와 소규모 육상 전투가 이어졌다. 영국은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전투력을 이용해 해상 장악권을 확보하고, 점진적으로 섬을 탈환해 나갔다.
포클랜드 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안에 아르헨티나는 항복을 선언했고, 포클랜드는 다시 영국령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 전쟁은 단기간에 끝났지만, 아르헨티나 내부에서는 군부 정권의 몰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는 강대국이 여전히 식민지 문제를 무력으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포클랜드 전쟁은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전략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전쟁은 빠르게 끝났지만, 그 후폭풍은 길고도 깊었다.
짧은 전쟁은 마치 한순간의 불꽃처럼 시작되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변화와 충격은 오히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전쟁 못지않게 크고 깊다. 영국과 잔지바르의 전쟁은 강대국의 압도적 힘이 약소국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중동의 전격전은 몇 날 사이에 지역 질서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다. 포클랜드 전쟁은 짧지만 뚜렷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짧은 전쟁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전쟁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전쟁이 남긴 상처와 변화의 크기라는 점이다. 몇 시간, 몇 날 만에 끝났다고 해서 그 전쟁이 가볍거나 의미가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짧은 전쟁일수록 그 폭발력과 여파는 더 깊고 넓게 퍼져나간다.
짧은 전쟁은 인간 사회의 본성과 국제 정치의 냉혹함을 드러낸다. 힘의 논리가 압도하는 순간, 외교는 무력하고, 정의는 침묵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짧은 전쟁들은 다시금 인류가 평화를 얼마나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전쟁은 길든 짧든, 인간이 결코 쉽게 선택해서는 안 될 마지막 수단임을 역사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